생각없이 인스타에 글을 싸서 조회수를 모으자
생각없이 인스타에 글을 싸서 조회수를 모으자
하이데거는 현대기술의 본질을 '게슈텔'이라 불렀다. 현대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놓으라고 몰아세우고,
그 앞에서 모든 존재자는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쓰고 바꿔 끼울 수 있는 '부품'이 된다. 존재자 각각의 고유한 의미가 '쓸모'라는
기술적 맥락 하나로 좁혀지는 것이다.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AI에 글쓰기를 통째로 맡기는 순간,
글은 사유의 행위가 아니라
조회수와 돈을 벌기 위한 자원이 된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매일 똑같은 화면이 펼쳐진다.
출처는 불분명하고,
문장은 수식어로 가득 차 있으며,
근거와 내용은 텅 비어 있다.
AI가 써준 글을 자신의 언어인 양 올리는 계정,
오직 조회수를 노리고
글을 찍어내는 계정들이 피드를 잠식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불쾌한 감정의 문제일까?
물론 나는 불쾌하다.
그러나 이 불쾌함은 취향을 넘어,
글쓰기가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고르는 확률 모델이다. 그래서 출력되는 글은 대중이 써 온 텍스트의 평균에 가깝다.
매끄럽지만 공허하다.
삶을 살아 본 적 없는 기계가 쓴 글을, 사유하지 않는 인간이 올리는 구조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고유한 경험도, 감정도 없다.
사유를 건너뛴 채 AI에 의탁하는 일이 거듭될수록,
그 사람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곧 실존에서 멀어진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현존재'라 불렀다.
그저 살아 있다고 느끼기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스스로 묻고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이데거가 기술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로 제시한 것은 '내맡김'이다. 기술을 무작정 거부하지도, 그것에 끌려가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묻는 태도다. 이를 오늘의 글쓰기에 옮기면,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신 불편하더라도 자기 언어로 생각하는 일이다. AI를 쓰더라도 사유의 주체는 나여야 한다. 결국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팔로워 수도, 조회수도 아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쓰는 것, 그것이 인간이 실존하는 방식이다.